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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_Music > Rock > 동래부사 송상현과 석유왕 록펠러

 
작성일 : 20-05-25 20:46
동래부사 송상현과 석유왕 록펠러
 글쓴이 : 추소혜07
조회 : 429  

오늘의 기념일을 보니 세계 거북이의 날(World Turtle Day)도 있네요.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 발발했네요. (~ 1598년 12월 16일) 1592년에는 조선의 이조판서 송상현 사망했고, 1937년에는 미국의 사업가 록펠러가 사망했습니다.

오래 사는 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 거북이의 날도 있네요. 그리고 기억할만한 두 분을 포스팅해 봤습니다.

주말인 오늘도 유쾌한 유머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사자와 거북이 (유머)

사자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했다.

사자는 거북이가 불쌍했던지 거북에게 한마디 했다.

"야! 왠만하면 가방 좀 벗고 뛰지!!"

거북이는 늦어서도 열 받았지만 꾹 참고 걸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흘렀을 때 사자는 거북을 놀려주기 위해 또 다시 한마디 했다.

" 야 ~~ 가방 좀 벗고 뛰어!!"

거북이는 참다 참다 사자에게 한마디 했다.

.

.

" 야! 넌 그 긴 머리나 묶고 뛰어 !!

◇ 戰死易 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1592년 4월 15일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카는 동래성 앞을 포위한 뒤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엄포를 놨으나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어 주기는 어렵다' 라고 답하며 동래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장렬히 순국하셨고 후에 충렬공으로 추대되었다. (동래 충열사내 기념비)

동래성 전투는 부산진 전투에 이어 일어난 임진왜란 두 번째 전투로 동래 부사 송상현이 끝까지 버티며 왜군을 막아냈으나 결국 전사하고 동래성은 함락되었습니다.

동래성의 함락이 다가오자, 송상현은 조복으로 갈아입은 뒤 북쪽을 향해 절을 한 후 고향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시 한수를 썼습니다.

고성월훈 열진고침

孤成月暈 列鎭高枕

고립된 성을 적이 달무리처럼 에워쌌고, 옆의 고을은 잠자고 있네.

군신의중 부자은경

君臣義重 父子恩輕

군신간의 의가 중하여 여기서 죽게 되니 부모님의 은혜를 소홀히 하는 불효를 용서하소서.

송상현은 몰려든 일본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왜군의 칼에 맞아 전사했다. 송상현의 애첩과 동래성의 아낙들은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던지며 일본군에 맞서다가 역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고니시는 송상현의 충절을 높이 사서 그의 시체를 온전히 보존하게 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냈지만, 끝까지 저항한 동래성 백성들은 학살했다. 동래성 백성들은 성의 해자로 끌려나와 모두 참혹하게 처형된 뒤 해자에 파묻혔다.

◇ 송상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덕구(德求). 호 천곡(泉谷)·한천(寒泉). 시호 충렬(忠烈).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문관으로, 전쟁 초기 부산 동래성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서 성을 지키며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첨사 정발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하루만에 동래성에 도달했다. 제승방략에 규정된 대로 양산 군수 조영규와 울산 군수 이언성의 병력이 도착했고 경상 좌병사 이각과 경상 좌수사 박홍이 동래성을 구원하러 왔지만, 병력이 열세였던 탓에 딱히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이각은 동래성을 구한답시고 산에 진을 치겠다며 빠져 버렸다. 양산 군수 조영규도 동래성을 구원하러 왔지만 공성전시 외곽에 별도의 병력을 배치해 구원군을 차단하는 일본군의 전술에 밀려 후퇴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래성에 도착하자 전투를 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서 송상현에게 보여주었다.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달라.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戰死易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이에 양군 사이에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으며, 초반에는 일본군이 패하고 후퇴했으나 곧 전열을 재정비했고 결국 조선군이 중과부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게 되자 부채에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뒤 조복을 갈아입고 북향 사배를 올리고 항전을 이어가다 전사했다.

나무위키 참조


◇ 석유 장수

석유업자A : 석유수입을 올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어.

석유업자B : 어떻게 말인가?

석유업자A : 아메리카 스타일로 해보자구!

석유업자B : 아메리카 스타일이라구?

석유업자A : 가격은 그대로 둬두고 배럴규격을 줄이는거야.

* 배럴(barrel) : 석유의 계량단위로 미국에서는 42갤런, 영국에서는 35갤런

◇ 여하용은전 상여대상량

如何用銀錢 常與袋商量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는 항상 주머니와 상의하란다' 주머니 사정을 봐가면서 쓰라.

◇ 록펠러

빌게이츠의 재산보다 무려 3배를 보유한 석유부자, 죽기전까지 가진 재산은 미국 전체 부의 1.53%인 약 172조원.

그는 53세에 최고의 갑부가 되었지만 불치병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우연히 액자에 걸린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문구를 보고 기부와 남을 위해서 살기 시작했다. 나눔의 삶인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그의 병은 사라졌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선한 일에 힘쓰며 살았고, 나중에 죽기전에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석유왕 록펠러

1839년 뉴욕에서 약품 판매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록펠러는 1853년 오하이오로 이사가 거기서 자랐다. 록펠러는 집안이 어려워 어렸을 때부터 칠면조를 키워서 팔거나 사탕을 대량으로 사서 팔아 이윤을 남기면서부터 돈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855년 열다섯 살 때 소년 가장으로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6개월짜리 비즈니스 코스에 들어간 그는 과정을 3개월 만에 마치고 조그만 곡물위탁판매회사의 경리사원 보조로 취직해 돈을 벌었다. 어려서부터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기록했던 그에게는 숫자가 하루하루의 반성이었던 셈이다.

처음 3개월 동안 일하고 받은 급여는 50달러로, 일주일에 3.57달러를 받은 셈이었다. 회사 측은 일 잘하는 그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하면서 임금을 한 달에 25달러로 올려주었다. 록펠러는 그렇게 해서 번 돈 1천 달러와 아버지한테서 빌린 돈 1천 달러를 합해 친구와 함께 1859년 열아홉 살 때 아예 곡물중개회사를 하나 차렸다.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회사는 성공을 거둔다. 그는 북군에 소금과 돼지고기를 팔아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같은 해 조지 비셀(George Bissell)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시추에 성공한다.

그는 ‘진짜 돈’은 석유 채굴업이 아니라 운송과 정유를 담당하는 중간상이 번다는 것을 간파했다. 록펠러는 친구와 함께 차린 곡물중개회사를 계속하면서 1863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정유소(精油所)를 설립했다. 당시의 정제시설이란 뒷마당에 설치된 과학 실험실 정도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게 돈이 되었다. 이후 이것이 번창해 주업이 되었다. 그 무렵 클리블랜드에만 20개의 정유회사들이 있었는데 모두 대박을 쳤다.

석유가 산업용으로 다양하게 쓰일 가능성을 보이자 유전 개발에 뛰어들기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재빨리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은 정제공장을 차린 것이 적중한 것이다. 

스탠더드오일 설립

록펠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철도회사와의 운송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주변 정유공장을 흡수 합병하는 전략을 짠다. 그 시작이 자신의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로써 1870년 1월 1일, ‘스탠더드오일’이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사장은 록펠러, 부사장은 윌리엄 록펠러였고, 플래글러가 재무담당 이사를 맡았다. 오늘날 시세로 약 11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본금 100만 달러로 문을 열었다. 스탠더드오일은 정유 사업과 제조공장, 창고, 운송시설, 유조차 등 석유 관련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미국 전체 정유 시장에서 1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었다.

나무위키 참조

뭔가 성공을 하려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록펠러와 아래 설명하는 조지 바셀을 보면 알게 되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세상의 흐름과 지금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잇인가를 정확하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마치 일만 시간의 법칙 처럼요.

◇ 석유의 가치를 알아본 조지 비셀

월가의 주식 전문 변호사인 조지 비셀은 휴식차 방문한 고향에서 석유 샘플을 본 순간 조지 비셀은 직감적으로 연료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봅니다. 그는 당시 ‘약국에서 의약품으로 팔리는 석유를 조명용 기름으로 쓰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예일대학교 벤저민 실리먼 교수에게 석유 성분 분석 및 용도 조사를 의뢰합니다. 1855년 4월, 보고서는 ‘석유는 다양한 물질로 분류될 수 있으며, 값싼 공정으로 램프에 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기름도 얻어낼 수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 뒤 비셀은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펜실베이니아 석유회사를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1년간의 노력 끝에 1859년 펜실베이니아 주 타이터스빌에서 처음으로 시추 석유가 나왔습니다. (드레이크가 기계굴착 방법으로 암반 밑 21미터까지 뚫어 유전 개발에 성공)

유정 발견에 성공한 드레이크는 곧 펌프를 설치해 그날부터 매일 30배럴씩 원유를 퍼 올렸다. 비록 소량이었지만 당시 시장의 수요로 보아서는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석유는 배럴당 20달러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고 이것이 근대 석유 산업의 시작입니다.

◇ 록펠러 명언

* 성공의 비밀은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행하는 것이다.

* 진정으로 부유해지고 싶다면 소유하고 있는 돈이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도록 해라. 개인적으로 일해서 벌어드릴 수 있는 돈은 돈이 벌어다 주는 돈에 비하면 지극히 적다.

*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은 돈을 벌 시간이 없다.

* 나는 그저 나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을 채용했을 뿐이다.

#송상현 #록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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